태어남은 한 개체의 탄생만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의 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철학의 논쟁 중 하나로 개인의 죽음과 우주의 죽음이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와 비슷한 성격으로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달을 쳐다보지 않을 때도 달이 존재한다고 믿지 못하겠냐고 회의적 입장을 가졌다.
즉, 아인슈타인은 개인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일 뿐, 그로 인해 우주는 영향받지 아니하고 따로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우주는 우주의 탄생으로 탄생하고 인간의 탄생과 우주는 어떤 연결점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든 하지 않든 달을 보든 보지 않든 달은 변함없이 달로서 완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아인슈타인의 입장이 옳다. 하지만 이 우주가 매우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론은 아인슈타인이 틀렸다.
물론, 달은 거시적 세계에 존재하므로 인간이 관찰하지 않아도 달은 달로서 존재한다. 미시적 세계에서는 관찰에 따라 상태가 변한다. 우리가 쳐다보지 않을 때도 달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거시적 세계에서도 미시적 세계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쳐다보지 않을 때 달은 달로서 완전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인간의 죽음은 한 개체의 죽음일 뿐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국가 무형유산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가 자신이 보유한 연극, 음악, 무용, 공예 기술 등을 전수하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 무형유산은 한 인간의 죽음과 같이 소멸한다. 한 개체의 죽음이 그 개체를 이루고 있는 육체의 소멸에 그치지 않고 우주에 존재하던 무형유산(정보)과 함께 소멸한 것이다.
인간이 탄생하기 이전에도 여전히 우주와 지구는 존재하고 있었으나 인간이 탄생함으로써 인간이 그 위에 쌓아 올린 정보들은 인간과 함께 탄생하였으며 인간의 소멸과 함께 소멸할 것이다. 인간의 멸종은 인간의, 정보의 소멸과 함께 멸한다.
또한 그러한 측면은 별개로 이 우주는 누구도 관찰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주파수의 향연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물리적인 현상들도 뇌가 다시금 재해석, 재탄생시킨 하나의 정보 체계이다. 흑백이며 숫자로만 된 데이터를 구분하기 어렵듯이 그래프도 넣고 컬러도 넣고 하여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시간을 최적화시킨 것이 우리가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물리적 영역 또한 하나의 정보 체계이며 인간이 텍스트로서 정리한 정보의 소멸만이 정보의 소멸이 아니며 그러한 해서 체계 또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도 소프트웨어지만 Windows라는 OS도 소프트웨어이다. 모든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이지 하드웨어는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아니라 한 개인이라는 개체의 삶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한 개체의 탄생이 하나의, 우주의 탄생이라거나 한 개체의 죽음이 하나의, 우주의 죽음이라거나 하는 것은 어느 정도 과장된 표현일 수 있다. 물론, 한 개체의 탄생과 죽음이 하나의 우주의 탄생과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 무게는 모두가 평등하지 않다. 어떤 회사의 어떤 직원이 죽음이 회사의 죽음과 같을 수 있는가? 회사 일부의 죽음일 수 있고 회사의 죽음일 수도 있다. 그 직원이 대체가능한 직원이라면 그 죽음의 무게는 가벼우며 대체될 것이고 회사의 죽음이긴 하지만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직원이 대체 불가능하였으며 그 직원이 맡고 있던 역할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되었다면 그 직원의 죽음은 회사의 죽음과 연결될 수 있다. 한 인간의 죽음이 우주의 죽음이라고까지 말하려면 타인들과 구별되는 특별함, 대체 불가능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석탄, 흑연, 다이아몬드의 소멸 전부 탄소의 소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그것의 가치를 진정으로 동등하다고 느끼는가? 모든 인간의 가치는 진정으로 동등한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현실은 오답이 정답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또한 주관적인 면모에서 구별할 수 있는 일이며 객관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우리 사회에서 그 한 인간이 대체 불가능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공리적 인간이었어야 할 것이다. 석탄과 흑연 다이아몬드 전부가 가격이 비슷하며 용도에 따라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달라진다면 주관성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지만, 다이아몬드가 시장에서 가격이 더 높다면 그 가치가 더 높음을 인정받은 것이며 이는 객관적으로 더 가치 있음을 의미한다.
대체 불가능한 공리적 인간의 죽음은 한 우주의 죽음이라 불릴만하며 그러한 인간이 아님에도 한 우주의 죽음이라 해준다면 종교(아편)와 같다. 종교가 사기라거나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며 우리는 모두, 종교(아편, 방어기제)가 필요하다. 삶은 고통이므로, 나의 죽음(육체)은 나의 우주(정보)의 죽음과 함께 공멸한다. 그 우주(정보)가 얼마나 공리적이었는지에 따라 한 우주로서 인정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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