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가 있다. 절대적 진리란 불변하는 참값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패러다임으로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그 참값이 변하기에 절대적 진리가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예절은 다른 국가에서는 예절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절일 따름이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어떤 정의가 때에 따라 정의가 아니게 된다면 애초부터 정의는 정의였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상대적 진리라 함은 인간 중심적 진리이며 인간 관점의 진리를 말한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추종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이 우주에서 인간이 전부 사라져도 여전히 우주는 존재하며,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도 여전히 우주는 존재하였고 절대적이라함은 이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절대적 진리여야 절대적 진리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뉴턴의 시대까지 그리고 뉴턴의 운동법칙까지는 절대적 시공간의 우주에서 절대적 법칙에 따라 비례적인 진리를 믿었다. 질량이나 늘거나 속도가 늘면 운동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시대부터는 이는 상대적이다. 고정적이지 않고 속도에 따라 달라 보인다. 상대적이라함은 단순히 고정적이지 않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대상을 여러 관찰자가 바라볼 때 관찰자의 조건에 따라 대상의 결괏값 자체가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대상은 누가 관찰하냐에 따라 서로 다른 대상이다.
즉,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 이전의 그리고 인간 이후에 존재하는 우주는 또 다른 우주이며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고 그것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우주를 관하며 그 필터 너머의 것은 볼 수 없다. 볼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아니함과 같으며 말할 수 없음과 같다. 그러므로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의 답은 전부 어쩌라고 밖에 안된다.
절대적 진리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것은 삶을 허비하게 된다.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 하면 현재 우리가 인간이라는 유기체, 생명으로서 태어나 존재하게 되었으며 자본주의라는 상황에 놓여있음에, 이러한 상대성에 따른 진리를 추구해야함이 옳다는 것이다. 유기체는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 옳으며 자본주의에서는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곧 상대적 진리이자 절대적 진리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시작과 끝이 같고, 상대성과 절대성이 같다. 누군가가 이러한 나의 주장(행복과 돈 추구)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렇다 틀렸다. 나도 안다. 그런데 그 틀렸다는 것에 대한 답은 어쩌라고 이다. 당연히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틀렸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인간으로 자본주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맞다. 그런데, 요즘은 방구석 철학자 또는 애새끼들이 자꾸만 인간(존재함, 생명체)과 자본주의에 대해서 자꾸만 틀렸다고 한다.
사실 인간의 규율도 인간의 규율, 즉 상대적이고 보편적이지 않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정글 속에서 동물들은 어떠한가? 인간을 빼고 좀 더 보편적인 규율이 무엇인지 탐구해 보자면 좀 더 보편적 진리(넓은 범위에서 참값을 갖는 것)인 것이 절대적 진리에 더 가깝다고 보자면 인간이 가진 규율이나 법령은 좀 더 협소한 진리(상대적 진리)이다. 그렇다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인간은 틀려먹었다고 말한다면, 그 자신은 틀렸다고 말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죽임당하거나 강간당하거나 갈취당하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좀 더 보편적인 진리라함은 그러한 것이다. 즉 이 우주 공간의 전체, 이 우주가 존재함에서 소멸까지의 시간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 진리에 대한 탐구와 그러한 보편적 진리가 옳다는 주장에 대한 답은 어쩌라고 이다. 어쩌라고? 정글에서는 법도 없으니까, 인간도 그렇게 살자고? 어쩌라구? 너나 그렇게 살아. 이 우주의 좁디좁은 공간을 향유하는 인간의 공간과 짧디짧은 시간을 향유하는 인간의 시간 속에서 상대적이고도 협소한 진리는 결코 보편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을지언정 그것이 가치롭고 의미 있는 진리이다.
옳음에 집착하면 결국 그름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우주 시공간의 전체를 아우르는 진리란 인간을 벗어나는 진리이며 인간에게는 어쩌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무엇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음에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멀리하려고 노력하고 자본주의에서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축적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 돈의 기본 속성은 사회에 이로움을 제공하면 그 인간에게 보상으로 돈을 주는 것이며 사회에 폐를 끼치고 돈을 버는 행위는 사기이지. 정상적인 거래라고 볼 수 없다. 누군가에게 갈취하는 돈과 정당하게 거래(계약)를 통해 받아낸 돈은 다르다. 이 우주에서 아주 협소한 진리, 그것이 인간 절대적 진리이며 우주 절대적 진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그것은 절대적 옳음이지만 상대적으로서 틀렸다. 절대적 옳음의 답은 어쩌라고 이며 상대적 틀림의 답은 그렇습니다 이다. 나는 이 우주에서 상대적으로 틀렸으며 인간 중심적이고도 인간 제멋대로의 진리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으로 족하다.
절대적 진리는 항상 맞지만, 항상 틀렸다. 상대적 진리는 항상 틀리지만, 항상 맞다. 절대적 진리는 절대적 거짓과 같으며 상대적 진리는 절대적 진리와 같음이다. 극소(0)가 극대(무한)와 같고 시작과 끝이 같다. 이 글을 우매한 방구석 철학자들에게 바친다. 절대적 진리란 있지만 어쩌라고 이다. 이 우주에는 인간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어떠한 것들이 존재하겠지만 존재하는지 인지할 수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일함이며 절대적 진리란 또한 인간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용할 수 없기에 그 또한 거짓임과 동일함이다. 절대적 진리충이 되어선 안 되며 그 길은 인간 사회로부터 멀어지며 방어기제로 점철되고 행복을 부정하고 허무를 추구하는 길이며 그 과정과 끝은 황폐하다. 모든 인간들이 행복과 돈을 (정당하게) 추구하고 고통을 멀리하려고 노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썼다.
일상 속에서는 행복한 일상만이 진리이다. 나머지에 대해선 잊어버려라.
자주 쓸 동작이 아니면 잊어버리고, 필요한 동작이라면 기를 써서 당신 것으로 만들어라. -브루스 리(Bruce Lee)
우리가 이미 태어나고 존재하게 된 인간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조건 속에서 무엇을 가장 바라고 무엇을 가장 자주 쓸 동작인가? 나머지는 잊어도 좋고 어찌 되어도 좋은 일이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살아라. 그냥 나름대로의 결론 하나면 족하다. 과학 또한 그것을 추구함에 있어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생존과 행복 총합에 도움이 되는 일들이여야 하며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어떠한 탐구자가 인간 사회의 가치와 동떨어진다면 그것은 탐구자라 할 수 없고 잉여 인간이라 불러야 옳다.
글을 읽어주어서 상대적이고도 협소한 의미에서 감사합니다.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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