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엄마를 계속 올라가다 보면 하나의 단세포생물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단세포생물의 어머니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지구)이다. 근원의 근원은 근원이며 신의 신은 신이다. 삼라만상은 가이아로부터 나왔으며 가이아는 모든 것의 시작인 빅뱅으로부터 나왔다. 모든 것의 2번째 신은 가이아이며 그 가이아의 어머니는 1번째 신인 빅뱅이다. 신은 신을 낳고 1번째 신(인)은 2번째 신(과)을 낳고 다시 2번째 신(인)은 3번째 신(과)을 낳는다. 할머니가 엄마를, 엄마가 나를 낳았듯이, 그렇다면 태초의 어머니(시작)는 누가 낳은 것일까? 1번째 신(과)의 신은 0번째 신(인)일 것이다. 빅뱅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또한 시간의 시작이다. 빅뱅의 이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며 존재하지 않았다. 빅뱅(1번째)의 빅뱅(0번째)은 점이다. 점은 크기가 없으므로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위치가 있으므로 거기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법률(법칙)이란 법률책(크기) 속에 있는가? 인간들의 머릿속(위치)에 있는가?
점(點):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는 도형.
어떤 물질이 왜 이렇게 운동하냐고 묻는다면 고전역학인 뉴턴의 운동법칙에 의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법칙은 왜 이렇게 되어있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다. 시간이 왜 느리게 흐를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왜 이렇게 되어있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다. 그 무엇으로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이해(인과)는 모든 신의 마지막 신, 1번째 신에서 단절된다. 마지막 신 이전의 0번째 신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0번째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력은 우주의 모든 위치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중력의 크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주의 모든 공간이 존재 하지 않는다면 중력 또한 사라지는가? 중력은 어디에 있는가? 중력은 인간(우주)의 영역에 존재한 것이 아닌, 무(無)의 영역에 있다.
무(無)의 영역에 무엇이 있나? 없다.
인간의 영역은 유(有)의 영역이며 그러한 유(有)의 근원은 무(無)이다.
인간(작용)의 영역에는 유(有)가 있으며
신(법칙)의 영역에는 무(無)가 있다.
없음(無)이 있다(有).
신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신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신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곳(점, 마음, 위치)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장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장 4절]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세기 1장 5절]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1번째에서 단절되며, 0번째에 대한 질문의 답은 존재할 수 없다.
유(有)는 무(無)로 부터 나온다.
빛(+1, 有)과 어둠(-1, 無)은 한 쌍이며 신은 인간(+1, -1, 有)을 자신(0, 無)을 본따서 창조하였다.
빛(+1)과 어둠(-1)은 신(0)에 의해서 신(0)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신(無)은 없지만 있으며, 그러한 신(無)의 신은 없다. 없음 조차 없음(無無)이라.
신(無)의 신(無)은 무무(無無)이다.
'있음(有)'의 근원은 '없음(無)'이며
'없음의 있음(無有)'의 근원은 '없음의 없음(無無)'이다.
모든 것이(∞, 무한)이 신(0)으로부터 나왔으니 모든 것과 신은 같다.
그러한 신은 어디로부터도 나오지 않았으니 그 근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음이라 말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라고도 여전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불멸의 이름으로 불리고 모든 세상에 의지하며 그 무엇도 벗어날 수 없으며 '존재(saya)', '지성(jnna)', '무한(annata)'으로 정의되며 불변하고 정신의 영역에 있고 불멸이기에 변화하고 물질적이고 소멸하는 모든 것들과 명백히 구별이 되며 형상이 없는 것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다양하고 다원적인 현상계의 기저에 이고 변화하는 세계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재이고 우주의 바탕이고 불가멸하고 궁극적이기에 존재의 온갖 형상에 선행해 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고 그 어떤 다른 것을 빌어 적절히 정의내릴 수 없기에 어떤 범속한 방식으로 알려지지 않고 언어로 표현되지 않고 오히려 언어를 능가하게 마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마음이 생각할 수가 있게 하며 변화하는 세계의 모든 부분과 측면의 기저에 놓인 불멸하고 불변하는 실재이며 우주에 있는 무엇이든 모든 사물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우주의 주재자와 같고 마음의 운동에 의하여 나타난 모든 힘은 전적으로 브라흐만의 힘이며 스스로 빛나고 무형체이고 모든 것의 안과 밖에 있으며 태어지 않고 청정하고 가장 큰 것보다도 크고 호흠도 마음도 없는 영원불멸의 존재이고 감관과 이지의 세계와 달리 이름과 형태를 초월하기에 무엇으로도 묘사할 수 없고 아무것도 브라흐만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에 기술되지 않고 표현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생각도 할 수도 없는 존재의 기반이며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이고 인간이 숭배하는 어떠한 유일신과 다른 신들과 동일시되지 않고 감관과 이지로는 파악되지 않고 브리하다란야까에서 묘사되길 앞, 뒤, 안, 밖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이자 접히지도, 쇠하지도, 어디 붙어 있지도 않고 고통과 상처를 입지도 겪지도 않아서 접히지도, 쇠하지도, 붙지도,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고 나오고 모든 행위는 이 브라흐만으로부터 비롯된다."
〈道(도)〉
보는 자는 보지 못할 것이며
듣는 자는 듣지 못할 것이며
찾는 자는 찾지 못할 것이다.
무형의 무존재, 움직임의 움직임 없는 근원이다.
영의 무한한 본질이 생명의 근원이다.
영은 영 스스로이다.
영은 영 그 자체이다.
벽이 생기고 방을 만든다.
그럼에도 벽 사이의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항아리는 진흙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그 속에 생긴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행동은 무언가에 무엇도 아닌 힘에 의해 드러난다.
무엇도 아닌 영 그대로가 모든 형상의 근원이다.
사람은 육신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육신이 없다면 무슨 고통이 있겠는가?
영보다 육신을 더 아끼면, 그 자는 육체가 되고 영은 길을 잃는다.
그 자신, 그 영이 환영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착각은 현실이 환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환영을 창조하고 현실보다 그럴싸하게 만드는 자는
영의 길을 따라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
-노자(老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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