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할 때마다 만나는 떠돌이 개가 반가워 먹을 것을 조금 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가까워지고 개가 길거리에서 똥을 싸놓아도, 개가 뭘 알아 길거리에서 불쌍한데, 개가 내 바지춤을 물고 늘어져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화가 나더라도 참는다. 개를 때린다면 그다음 날부터는 개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므로, 개와 쌓아온 시간이 아쉬울 것이므로,
내 자식은 나로부터 나왔으며 피로 써진 혈육 관계로 종속된다. 또한 나의 자식의 생존은 나의 집에 종속되고 그것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즉, 자식의 생존 결정권은 완전히 나에게 있으며 자식은 나의 소유이다.
그런 무의식에서 소홀하다. 나의 소유이고 나의 지배하에 있고 생존은 완전히 나에게 의존하는 존재이므로, 소홀하다. 집 밖의 개는 관계로서도 나에게 종속되지 않고 생존에 있어서도 나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사실은 대등한 관계에 더 가깝다. 개는 내 자식보다 더욱 대등하다. 자식은? 하등하다. 그런 무의식에서 소홀하다. 하등하므로 화가 나면 참지 않는다. 짜증이 나가고, 폭언이 나가고, 폭력이 나간다. 만약 내가 자식을 때린다면 그다음 날에도 그 자식은 나의 집에 있을 것이므로, 자식은 도망갈 수 없을 것이므로, 그러나 그 자식의 마음(영혼)은 이미 집을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영혼은 육체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다. 집에 존재하고 있는 자식을 보고 아직 떠나가지 않았다고, 떠나갈 수 없다고, 그러므로 소홀하다면, 너의 집에는 고깃덩어리만 남아 있게 된다. 집에서 인간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닌 것이다. 집이라기보다 정육점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미 죽은 지 오래며 해체되어 전시되어 있는 돼지의 시체들이 있는 정육점 말이다. 너가 무의식적으로 소홀하다면 너는 정육점의 주인이 될 것이고, 의식적으로 소홀하지 않다면 집의 주인이 된다.
'목록 > 일상에 대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 정체성, 지향성은 몇 가지일까요? (1) | 2024.11.03 |
---|---|
외로움이라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 (0) | 2024.11.01 |
삶의 최선, 최중, 최악 (0) | 2024.09.14 |
무엇이 남여평등인가? (0) | 2024.07.16 |
폭력은 악행인가? 무엇이 선인가? (0) | 2024.07.16 |
결정론자가 되는 이유 (0) | 2024.03.16 |
행복이란 무엇인가? (0) | 2024.03.15 |
상점에 매일 찾아오는 남성 이야기 (0) | 2024.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