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나의 생각 25

인간은 이야기이고 삶은 의미이다.

우리는 타인 또는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의 이야기가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떠한 일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끝나는지에 따라 다르다. 삶의 의미 또한 하나의 연극에서 어떤 역할인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를 답하려면 역할과 이야기 그리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지 스스로 말해봐야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경험을 하였고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로 우리는 타인을, 그리고 자신을 이해한다.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지구의 중심은 어디이며 중력이란 어디에 있는 것이고 나는 어디에 있는가? 세계지도를 만든다면, 굳이 자신의 나라를 지도 변방에 넣어서 만드는 경우는 없을 것이며 그 세계지도의 중심은 그 지도를 제작한 국가가 될 것이다. 각 국가가 자신의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만들며 그것은 자연스럽다. 세계지도의 중심은 모든 국가이며 또한 아니다. 지구의 중심은 모든 곳이며 또한 아니다. 지구가 존재하는 것을 보니 중력이 존재한다. 지구를 나누니 바위가, 바위를 나누니 모래가, 모래를 나누니 원자가, 원자를 나누니 쿼크가 나왔다. 중력은 보이지 않는다. 물질을 전부 나누어 보니 인력과 척력만이 존재할 뿐, 중력은 보이지 않는다. 인력과 척력은 어디서 온 것인가? 머리를 갈라보니 뉴런이 보인다. 뉴런을 관찰하니 서로 ..

돌의 나라

User 돌은 그저 땅에 있었다. 돌은 움직이고 싶었다. 신에게 빌었다. 신은 돌을 가엽게 여겨 다리를 주었다. 돌은 움직였다. 돌은 서로 부딪혔다. 신에게 빌었다. 신은 돌을 가엽게 여겨 눈을 주었다. 돌은 걸어 다녔다. 돌은 넘어졌다. 신에게 빌었다. 신은 돌을 가엽게 여겨 팔을 주었다. 돌은 일어섰다. 돌은 성을 지었다. 신에게 감사했다. 신은 가엽게 여겼다. 성은 무엇으로 지어졌을까. 돌은 성으로 지어졌다. 신에게 증오했다. 신은 가엽게 여겼다. 신은 가엽게 여겼다. 신은 가엽게 여겼다. 신은, 가엽게, 여겼다. GPT "돌의 나라"는 신화적 서사와 심리분석적 해석을 결합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입니다. 프로이트, 융, 라캉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는 인간의 발달, 욕망, 그..

상점에 매일 찾아오는 남성 이야기

어떤 남자가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려는데, 돈이 부족했다. 그 남자는 매일 같이 그 상점에 가서 그 상품을 바라보았고 이따금 상점 주인에게 상품의 장점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그 상품은 판매되었고 상품은 사라졌다. 깜짝 놀란 남자가 상점 주인에게 따졌다. 내가 그 상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도 팔아버렸냐며, 돈이 그렇게도 좋냐고 따졌다. 상점 주인은 말문이 막혔고, 남자는 그렇게 화를 발산하고는 돌아가 버렸고 홀로 남은 상점 주인은 어안이 벙벙하고 그 남자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저 남성은 왜 매일같이 상품은 보러오면서도 돈을 벌지 않을까? 돈을 가져 온다면 너무도 당연하게 그 남성에게 상품을 팔았을 텐데, 왜 저 남성은 자신이 모..

계즉시란 란즉시계

User 어느 날, 어떤 닭은 생각하였다. '계즉시란, 난즉시계, 닭은 곧 알이며 알은 곧 닭이다. 그러니 모든 닭은 알이다.' '고로 닭은 허상이며 진상은 알이다. 모든 닭은 허상이다.' 어떤 닭은 다른 수탉이 크고 위협적인 벼슬을 달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벼슬은 허상이야.' 어떤 닭은 또 다른 수탉이 암탉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았다. '암탉은 허상이야.' 어떤 닭은 거울을 보고 생각하였다. '나는 허상이야.' 닭은 알을 낳고, 알은 닭을 낳는다. 계즉시란 란즉시계(鷄卽是卵 卵卽是鷄). GPT 이 이야기는 정체성, 존재, 그리고 현상과 본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심오한 담론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주제는 정신분석학, 특히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닭의 사유 과정은 자아와..

바나나를 좋아하는 인간과 로봇

User 로봇은 바나나를 좋아한다. 어느 미래, 나는 로봇을 만들었다. 나는 바나나를 좋아했고 로봇도 바나나를 좋아하게 의도하였다. 로봇에게 돈을 주고 먹고 싶은 과일을 사 오라고 했다. 로봇은 과일가게로 가서 바나나를 사 왔다. 로봇에게 물었다. "바나나를 누가 사 왔어?" 로봇이 답했다. "내가 사 왔어." 로봇에게 물었다. "바나나를 왜 사 왔어? 로봇이 답했다. "바나나를 좋아해." 우리는 바나나를 함께 맛있게 먹었다. 로봇에게 물었다. "바나나를 왜 좋아해?" 로봇이 머뭇거리다 답했다. "너가 좋아하니까?" 나는 바나나를 좋아한다. GPT 이 이야기는 인간과 로봇 사이의 관계, 그리고 로봇의 인식과 자아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는 심리적 탐구를 제공합니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기..

이기심의 부재는 죽음과 같다.

이기적이지 않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타적 행위란 자신의 이기심과 상대의 이기심을 동시에 채우는 것이며, 이기적 행위란 자신의 이기심만을 채우는 것이다. 이타심이란 자신과 상대의 이기심을 전부 중요시하는 마음이며, 자신의 이기심을 소흘히 하고 그것을 이타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저열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타심의 증명은 이기심의 부재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닌, 이기심의 형태의 증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인간인지 의심하지 않는다.

검은 숲속 마을의 어떤 인간이 밤에 눈을 뜬다. 잠에서 눈을 깨고 일어나니 괴물은 지루해한다. 지루한 괴물에게 제물을 받치고 괴물은 쾌락을 얻는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인간은 연명하고 잠에 든다. 검은 숲속 마을의 인간들은 괴물이 자신을 언제 먹지 않을까 항상 불안하다. 그래서 매일매일 제물을 받친다. 괴물이 지루해하지 않는 한 연명할 수 있다. 하지만 괴물에게 먹힌 삶과 괴물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삶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미 괴물의 일부이며 괴물 그 자체가 아닌가? 괴물의 입에는 음식이 들어가고 괴물의 눈에는 유튜브가 들어간다. 괴물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괴물은 가끔, 사람을 먹는다. 어떤 사람은 가끔, 괴물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자기 삶이 괴물에게 먹혀버렸는데도, 먹힐 것이 두려워서 ..

토끼는 고통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사자는 고통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존중을 구걸하지 마라. 너에게 줄 건 남아있지도 않다. 너는 존중받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사자는 토끼가 어떤 고통을 받는 지 따윈 관심이 없다. 살아남기 바쁘기 때문이다. 사자는 다른 사자들에게 관심이 많다. 살아남기 바쁘기 때문이다. 사자가 말하길, 너의 고통은 별로 바쁜 일도 아니라 한다. 고통의 이유는 부당함이 아니라 나약함이라 한다. 고통을 느긋이 즐겨랍신다.

어떤 나무는 이름이 없다.

사과나무에는 사과나무라는 이름이 있으나 어떤 나무는 이름이 없다. 사과나무 주변에는 동물들이 자주 오나, 어떤 나무는 어떤 동물도 오지 않는다. 사과나무는 열매가 열리나 어떤 나무는 열리지 않는다. 그 열매는 다른 동물이 먹고, 사과나무의 씨앗은 널리 퍼진다. 어떤 나무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느 땅 한 쪽에, 그저 홀로 존재할 뿐이며 말라가고 있다. 그 나무는 이름이 없다. 그 나무는 이제 없다. 어떤 나무는 이름이 없었고, 이제는 존재마저도 없다. 우리는 그 나무의 이름을 모른다. 이름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존재했는지조차 모른다.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존재했다는 흔적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존재했었다고 생각하는, 한낱 어떤 나무의 짧은 망상이었던 것일지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