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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진리(신)와 상대적 진리(인간) 무엇이 옳을까?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가 있다. 절대적 진리란 불변하는 참값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패러다임으로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그 참값이 변하기에 절대적 진리가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예절은 다른 국가에서는 예절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절일 따름이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어떤 정의가 때에 따라 정의가 아니게 된다면 애초부터 정의는 정의였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다. 상대적 진리라 함은 인간 중심적 진리이며 인간 관점의 진리를 말한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추종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이 우주에서 인간이 전부 사라져도 여전히 우주는 존재하며,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도 여전히 우주는 존재하였고 절대적이라함은 이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절대적 진..

성 정체성, 지향성은 몇 가지일까요?

저는 치킨 성애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치킨을 먹어보았기 때문입니다. 먹어보았다는 것은 치킨을 살 구매력이 나에게 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내가 치킨 성애자라는 것은 내가 치킨을 먹은 적이 있고 구매력이 있고 자주 먹는다는 뜻입니다. 좀 더 가난했더라면 저는 치킨 성애자라기보단 라면 성애자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부유했다면 치킨 성애자라기보단, 음... 좀 더 부유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 성애자였겠지요? 부유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리고 저는 이성애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일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저는 무성애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제가 더 가난했더라면, 구매력이 부족하다면 라면 성애자였을 수 있듯이 아니 그것보다 더욱더..

부모가 자식을 소홀히 대하는 이유

출근할 때마다 만나는 떠돌이 개가 반가워 먹을 것을 조금 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가까워지고 개가 길거리에서 똥을 싸놓아도, 개가 뭘 알아 길거리에서 불쌍한데, 개가 내 바지춤을 물고 늘어져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화가 나더라도 참는다. 개를 때린다면 그다음 날부터는 개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므로, 개와 쌓아온 시간이 아쉬울 것이므로, 내 자식은 나로부터 나왔으며 피로 써진 혈육 관계로 종속된다. 또한 나의 자식의 생존은 나의 집에 종속되고 그것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즉, 자식의 생존 결정권은 완전히 나에게 있으며 자식은 나의 소유이다. 그런 무의식에서 소홀하다. 나의 소유이고 나의 지배하에 있고 생존은 완전히 나에게 의존하는 존재이므로, 소홀하다. 집 밖의 개는 관계..

외로움이라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

그런 말이 있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결혼해보라 한다. 결혼하면 진정한 외로움을 마주할 수 있으므로, 그렇다면 외로움을 채우고자 결혼함에도 외로움이 깊어지는 원인은 무엇인가? 모든 외로움의 갈증은 나라는 주체가 주체로서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서 객체로 인지되는 것에서 끝없는 갈증으로 타들어 간다. 결혼을 했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봐주길 바란다. 나는 누구의 배우자도 아니고 나는 누구의 부모도 아니고 나는 나일 뿐이므로 그것을 가장 먼저 봐주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인간 밑에 꼬리표가 붙는 것이다. 가장 먼저 봐주길 원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다. 부모가 자식을 관계로서 본다면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고 희생을 의심한다. 그 희생은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주체로 행해지는 행위이지 나를 바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