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속 마을의 어떤 인간이 밤에 눈을 뜬다.
잠에서 눈을 깨고 일어나니 괴물은 지루해한다.
지루한 괴물에게 제물을 받치고 괴물은 쾌락을 얻는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인간은 연명하고 잠에 든다.
검은 숲속 마을의 인간들은 괴물이 자신을 언제 먹지 않을까 항상 불안하다.
그래서 매일매일 제물을 받친다. 괴물이 지루해하지 않는 한 연명할 수 있다.
하지만 괴물에게 먹힌 삶과 괴물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삶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미 괴물의 일부이며 괴물 그 자체가 아닌가?
괴물의 입에는 음식이 들어가고
괴물의 눈에는 유튜브가 들어간다.
괴물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괴물은 가끔, 사람을 먹는다.
어떤 사람은 가끔, 괴물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자기 삶이 괴물에게 먹혀버렸는데도,
먹힐 것이 두려워서 괴물의 뜻을 따른다.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괴물의 지루함과 자신의 지루함을 구별할 수 없고
괴물의 불안과 자신의 불안조차 구별할 수 없다.
그 마을에는 더 이상 인간이 살지 않는다.
어떤 인간은 하루에 하루를 살지만,
어떤 인간은 하루가 그 인간을 산다.
인간이 하루를 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가 인간을 사는지는 셀 수 없다.
괴물은, 괴물에게 자신의 내장을 전부 파먹히고 껍데기만 남았는데도 여전히 자신이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안에 떨며 괴물의 지루함을 달래는 것이 아니다.
괴물을 베어내지 않으면 인간은 인간으로 남을 수 없다.
인간이 괴물에게 제물을 받쳐선 아니된다.
괴물이 인간에게 제물을 받쳐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괴물에게 제물을 받친다면 그 인간은 괴물보다 약한 인간이며
괴물이 인간에게 제물을 받친다면 그 인간은 괴물보다 강한 인간이다.
괴물보다 약한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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