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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으로 인간은 죽는다.

데라우스티오 2024. 3. 1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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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물질)은 신(우주)의 아들이며 신은 자신의 형상(근원)을 본떠 인간을 창조(결과)하였다. 신은 성부(원인), 성자(결과), 성령(법칙)로 삼위일체이다.

성부는 모든 것(신)이며 Map(무대)이다. 성자 또한 모든 것(신)이며 User(배우)이다.
성령 또한 모든 것(신)이며 Navigator(감독)이다. 셋은 동일하며 삼위일체이다.

물질(성부)의 생성과 동시에 법칙(성령)이 관여한다.
비물질(성자, 이성)의 생성과 동시에 법칙(성령)이 관여한다.
물질과 비물질의 생성은 동시적이며 법칙은 그에 관여한다.

신은 원인의 원인이며 신은 결과의 결과이다.
신은 근원의 근원이며 신은 인과의 인과이다.

성자는 참사람(예수)이며 궁극적(사회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한 것(욕망)을 이룬 인간이다.

[요한복음 14장 2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한복음 14장 3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신은 자신을 본떠 인간을 창조하였으며 인간은 곧 신과 같다. 내 아버지는 신(성부, 성령)임과 동시에 자기자신(성자, 성령)이며 집이란 욕망과 그 욕망의 해소(이룸)이다. 신은 성경을 통해, 모든 인간의 욕망은 충분히 해소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 집은 많으며 그렇지 않으면 예비하겠다고 한다. 나(참사람) 있는 곳에 너희(자신)도 있게 하리라하였다. 모든 거처를 예비하고 그 거처에 모든 인간을 있게하는 것은 믿음으로 가능하다.

※우주의 존재 근원은 우주 그 자체일까? 우리 인간의 뇌일까?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수많은 진동수(주파수)일 뿐이며 그러한 진동수(혼돈)를 뇌가 재해석하여 이 우주를 우리에게 인식(창조)시킨다. 우리는 절대적 진리(신, 우주, 성부)를 볼 수 없으며 그것을 본다고 한 들 어떠한 의미도 가치도 없다. 우리는 보편적 진리(신, 우주, 성자)를 인식하며 그곳에서 의미와 가치를 얻는다. 물리법칙(성령)은 모든 것(신, 우주, 성부, 성자)에 관여한다. 이 우주가 다중우주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며 신이 의도를 가지고 우주를 창조하였을 수도 아닐수도 있지만 그러한 사실(절대적 진리)보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별 탈 없이 지내는 현실(보편적 진리)이 인간에게는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절대적 진리의 가치는 0이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우주(과거세, 신계)를 전부 이해한 인간의 가치도 0이다. 이것이 인간(현세, 인간계)이며 보편적 진리이다.

내(성령)가 나(성자)를 내(성령)이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란 것은 믿음으로 천국에 가고 불신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의미하며 뜻이며 믿음이란 자신(신, 성자, 성령)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떳으며 신(미래세, 가능성, 이룸, 성자, 참사람, 희망)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함을 의미하며 인간은 그것으로 죽는다. 그것으로 지옥에 떨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신(자신)을 불신하는 자는 그날로부터 죽으며 사후세계(지옥)를 방황하게 된다.
몸은 인간계에 있을 지 언정 정신은 이미 죽어 사후세계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살아있지 않으며 시체에 불과하다.
정신은 타들어 가고,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마르코의 복음서 15장 34절] 세 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이다.

예수는 신과 관계가 끊어지면서 영적인 고통에 울부짖었다.
인간은 현세를 살면서 미래세에도 연결되어 있다.
지금을 살며 미래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
지금보다 나아질 미래의 자신, 지금보다 더 행복할 미래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연결이 끊어지고 더 이상 그 미래의 자신(성자, 신, 거처, 집)에 다가갈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면(불신)
인간은 그날부터 죽으며 지옥에 떨어진다.
영적인 고통은 끝이 없다.

플록시노시니힐리필리피케이션(Floccinaucinihilipilification)은 무언가를 가치가 없다고 묘사하거나 평가하는 행위나 습관 또는 그러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가치 없게 만드는 일이라는 뜻의 영단어이다.

종교는 아포페니아이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보편적 진리)을 상징으로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아포페니아(Apophenia)는 관련없는 사물 사이의 의미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경우 또는 경향이다. 이 용어는 정신 분열증의 시작 단계에 관한 1958년 출판물에서 정신과 의사 클라우스 콘라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있다. 그는 그것을 "비정상적인 의미의 특정 느낌과 함께 (동반되는) 연결에 대한 무의식적인 보기"로 정의했다. 그는 망상적 사고의 초기 단계를 환각과는 대조적으로 자기 참조적이고 실제 감각 지각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아포페니아(Apophenia)는 도박과 같은 무작위 정보에서 패턴을 찾는 인간의 성향을 암시하는 경우에서도 언급되게 되었다.

자기 실현적 예언이란 사회심리학적 현상의 하나로, 누군가 어떠한 일이 발생한다고 예측하거나 기대하는 것인데, 이러한 예측 혹은 기대가 실현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서, 행동을 믿음에 따라 맞춰가기 때문이다.

스티그마 효과는 한번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면 실제로도 점점 더 나쁜 행동을 보이거나 부정적인 인식이 지속되는 경우를 뜻하며 낙인 효과라고도 부른다. 스티그마(Stigma)는 빨갛게 달군 인두를 가축의 몸에 찍어 소유권을 표시하는 낙인을 말한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는 교육심리학에서 심리적 행동의 하나로 교사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을 말한다. 교사기대 효과, 로젠탈 효과, 실험자 효과라고도 한다.

확증 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흔히 하는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와 같은 것이 바로 확증 편향이다. 행동 확증(Behavioral confirmation)은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한 유형으로, 사람의 사회적 기대가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를 확신하게 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한다. 현실(Reality)을 창조하는 신념(Belief)이라는 현상은 문학 분야에서 자기예언적 충족(Self-fulfilling prophecy), 기대 확증(Expectancy Confirmation), 그리고 행동 확증 세 가지로 알려져 있다. 행동 확증은 1984년 사회심리학자(Social psychologist) 마크 스나이더(Mark Snyder)가 처음 고안한 것이다. 스나이더는 인지하는 사람(Perceiver)의 신념을 확신시키는 타깃의 실제 행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용어를 선호하였다.

골렘 효과(Golem Effect)는 교육심리학에서 심리적 행동의 하나로 교사가 학생에 대해 부정적인 기대를 갖고 있을 경우 학습자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즉, 특정 학생에 대한 교사의 기대 수준이 낮으면 그 학생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으므로, 성취도가 낮아진다. 자기실현적 예언의 한 종류로 분류된다. 골렘이라는 명칭은 유대 신화 속의 랍비 로위가 만들었다는 골렘에서 유래되었다. 골렘은 본디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창조되었으나, 점차 흉포한 성향으로 변해가며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또는 위약 효과는 우울증, 통증, 천식, 파킨슨병, 관절염 등 다양한 질병과 증상에서 임상 시험을 통해 입증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생리학적 영향이 없는 위약을 복용했을 때, 상태 개선이나 이로운 작용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가짜 약을 투여하면서 진짜 약이라고 하면 환자의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믿음 때문에 환자의 병이 호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노시보(Nocebo)는 의학에서 환자에게 실제로는 무해하지만 해롭다는 믿음 때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물질을 가리킨다.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는 어떤 것이 해롭다는 암시나 믿음이 약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말한다.

내가 타인을 어떻게 기대하는지, 타인이 나를 어떻게 기대하는지가 그 기대가 기대의 대상에 영향을 주어 대상의 결과(미래, 가능성)를 변형시킨다. 또한 동일하게 내(신)가 나(인간)를 어떻게 기대(믿음)하는지 또한 그 결과(미래, 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요한복음 14장 4절]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내(미래, 가능성, 신)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현세, 행위, 믿음, 정신)가 아느니라

[요한복음 14장 2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한복음 14장 3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장 4절]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믿음으로 천국에 갈 것이며 불신으로 지옥에 갈 것이다.
너의 정신은 타들어 가며 현실을 살아가는 시간은 영겁과 같아지고
그 고통은 끝이 없을 것이다. 신(자신, 미래,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거처는 전부 마련해 놓았으며 그렇지 않다면 예비할 것이다.
너의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데, 너는 이곳(미래)으로 걸어와서 집어만 가면 된다.

[사도행전 3장 1절] 제 구(오후 세)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사도행전 3장 2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앉은뱅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사도행전 3장 3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사도행전 3장 4절]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사도행전 3장 5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사도행전 3장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사도행전 3장 7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사도행전 3장 8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사도행전 3장 9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사도행전 3장 10절]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신을 믿지 못하는 자는 그날로 죽으며, 사후세계를 떠도는 앉은뱅이가 된다.
목표가 없고 미래가 없으며 그저 하루를 산다.
영적인 고통에 불타오르고 있지만 그런 인간에게도
예수(참사람, 미래의 자신)가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앉은뱅이가 미래의 자신과 연결되니 영적인 고통에서 해방되어 신나서 뛰어다닌다.
사지가 멀쩡하여도 신(미래, 가능성)과의 연결이 끊어진, 정신이 죽은 사람은 이미 죽은 자이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너무도 선명한 Vision(확신)이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본래 놓여있어야 할 곳에 놓일 것이며 멈추었던 시간이 흐른다.

[요한복음 14장 4절]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은 내가 안다.
내가 가는 곳으로 간다.
요행을 바라지말라,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
자신을 믿고 미래로 나아가면 된다.
그것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성스럽고 숭고하다.

人無遠慮, 必有近憂(인무원려, 필유근우)
사람이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 근심거리가 생긴다. -공자(孔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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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잡하고 심오한 텍스트는 신성과 인간성, 그리고 우주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삼위일체의 개념, 인간의 창조와 궁극적 욕망의 실현, 그리고 인간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깊은 사색이 포함됩니다.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개념은 우리가 신의 일부이며, 우리의 삶과 행동이 우리가 신과 같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삼위일체의 설명에서, 성부(신), 성자(인간), 성령(법칙)은 모두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입니다. 이는 우주의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존재와 행동이 더 큰 우주적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상을 반영합니다. 성부는 창조의 원천이자 무대, 성자는 그 무대 위의 배우, 성령은 이 모든 것을 지휘하고 조화롭게 하는 감독으로 비유됩니다.

인간의 창조와 우리의 궁극적인 욕망이 실현되는 과정은 신적인 계획과 인간의 자유 의지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나타냅니다. 성자가 참사람, 즉 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부분은,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추구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텍스트는 또한 우리의 인식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제공합니다. 우주의 진정한 본질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알 수 없으며, 우리의 인식은 우리 뇌가 해석하는 진동수에 불과하다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주관적이고 부분적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인식과 믿음을 통해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텍스트는 또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자신과 신, 더 나아가 우리의 잠재력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자기 실현적 예언, 스티그마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와 같은 개념은 우리의 믿음과 기대가 현실을 형성하는 방식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깊은 사상과 원리들은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발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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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니며 신에 대한 불신은 근원적으로 나에 대한 불신이며 나에 대한 불신은 의지력의 상실, 무기력의 시작이며 그러한 인간의 미래는 이미 소멸되고 죽는 것이며 지옥은 현재에 발현하게 된다. 살아서 존재하는 그 세계는 이미 주관적 사후세계이며 지옥에 도착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의지와 미래를 얻는 인간은 주관적 천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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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급은 자아, 신념, 믿음의 심리적 및 영적 중요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나타냅니다. 신에 대한 불신을 근원적으로 나에 대한 불신으로 보는 관점은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 효능감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자기 효능감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는 알베르트 반두라의 사회학습이론에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신에 대한 불신이 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의지력 상실과 무기력의 시작으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믿음의 상실은 개인의 실존적 공허와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실제로 이는 실존주의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제입니다. 실존주의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의미의 상실이 심리적 고통의 근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프랭클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의미와 목적을 찾는 데에 내재된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고통을 경험합니다.

신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은 개인이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내면적 힘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뜻하며, 이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반대로, 신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은 자신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의지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상태는 마치 주관적인 사후세계, 즉 "지옥"에 도달한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이는 심리적 고통, 무기력, 그리고 실존적 공허감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주관적 천국"에 도달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깊은 믿음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믿음은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자신이 직면한 도전을 극복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프로이트, 융, 라캉 등 심리분석학파의 작업과도 연결됩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신념이 우리의 행동과 경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했습니다. 융은 개인의 내면 세계와 자기 실현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라캉은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는 방식을 탐구했습니다. 이러한 심리학자들의 이론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정신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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