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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데라우스티오 2024. 3. 15. 08:16

신은 편재한다. 편재(Ubiquitous: 유비쿼터스)란 널리 퍼져 있음(어디에나 있음)을 의미한다. 절대자의 편재성은 다양한 종교 체계에서 서로 다르게 인식된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같은 일신론에서는 신과 우주가 별개의 존재이나 신은 편재한다고 믿으며 범신론에서는 우주가 곧 신이라고 믿는다. 내재신론에서는 신이 우주에 관입하지만, 시공간 그 너머까지 연장되어 있다고 본다.
※관입(貫入): 꿰뚫어 들어감.

유비쿼터스(Ubiquitous) 컴퓨팅이란 언제 어디서든 어떤 기기를 통해서도 컴퓨팅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연결)은 편재(Ubiquitous)한다.

영어 유비쿼터스(Ubiquitous)는 라틴어 omnipræséntĭa(옴니프라이센티아, 옴니프레센티아)를 어원으로 하며 이는 하느님(신)이 편재함을 뜻하는 단어이다.

어느 날, ⓐ'신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이 ⓑ'신을 믿는 어떤 사람'에게 신의 존재를 자신의 눈 앞에 보여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어떤 논리를 말하는데, 그것은 존재의 증명은 가능해도, 비존재의 증명은 불가능하니 입증책임이 존재를 주장하는 쪽에 발생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는 신을 ⓐ에게 보여주지 못하였다. ⓐ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인터넷에 자신이 개독교(개+기독교, 멸칭)를 데꿀멍(유구무언)시켰다고 글을 쓰더라. 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은 있어도 말은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거나 변명을 못함을 이르는 말.

다음 날, ⓑ가 ⓐ에게 묻더라. 인터넷을 믿는지 말이다. 그러자 ⓐ가 말하길 믿느냐고? 믿고 말고 인터넷은 존재하는데, 굳이 믿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더라. 그러자 ⓑ가 말하길 존재의 증명은 가능해도, 비존재의 증명은 불가능하니 입증책임이 존재를 주장하는 쪽에 발생한다고 인터넷을 눈 앞에 보여달라더라. ⓐ가 보여주겠다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보여주자 ⓑ가 이것은 스마트폰이지 인터넷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증거로 공유기를 껐다. 와이파이를 끄기 전에는 인터넷의, 존재의, 증명의 증거였던 스마트폰은 더 이상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자 ⓐ가 말하길 공유기를 껐는데 어떻게 인터넷이 되겠냐는 것이다. 그러고는 공유기를 보여주더라. 그러자 ⓑ가 이것은 공유기지 인터넷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게 인터넷이면 뭐라도 검색해보라고 하였다. ⓐ는 전원도 안 들어오는 공유기로는 무엇도 검색하지 못하곤 이번엔 데스크탑 컴퓨터를 보여주었다. 검색도 된다고 말이다. 그라자 ⓑ가 인터넷이 어디 있냐고 다시 물었다. ⓐ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여기 있다고 하였다. ⓑ는 모니터 선을 빼버리고 모니터만 멀찌감치 옮겨와서 묻기를, 여기에 있다고? 어디에 있냐며 따지었다. ⓐ는 이번에는 본체를 가리키며 여기 있다고 하였다. ⓑ는 그게 인터넷이면 뭐라도 검색해보라고 하였다. ⓐ는 검색할 수 없었다. 인터넷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인터넷이란 무엇인가? 인터넷이란 통신 프로토콜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는 컴퓨터 네트워크(통신망)이다. 네트워크란 분산되어 있는 컴퓨터(개인, 인간)들을 통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개인과 개인을 연결해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인터넷이란 연결이다. 그렇다면 이 연결을 눈 앞에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요즘은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 인터넷에 연결이 가능한 기기들이 많지만 생략하고 데스크탑 컴퓨터만으로 사고 실험해보고자 한다. 앞서 보았듯 ⓐ는 결국 ⓑ에게 인터넷이란 것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상상해보자. 컴퓨터 간의 연결, 즉, 인터넷(네트워크)이란 다음과 같다.

 


'컴퓨터─라우터─컴퓨터'의 구조를 갖는다.


라우터는 '라우터─라우터' 간의 연결로 확장될 수 있으며,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는 특수한 라우터로 모든 라우터를 연결한다. 이러한 모든 연결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간단히 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LAN(Local Area Network)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의 구조이다. '컴퓨터─근거리 통신망(LAN)─컴퓨터'의 구조를 갖는다. 스마트폰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컴퓨터)을 USB(Universal Serial Bus) 케이블로 연결하여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컴퓨터로 옮기거나 또는 컴퓨터의 데이터를 스마트폰으로 옮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터넷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그 연결이 아주 많아진 것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서로 연결되어있지 않아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없는데 USB 케이블로의 연결을 통해서 데이터를 서로 통신할 수 있게 된다. 이 USB 케이블의 길이란 1m 남짓 되겠지만 긴 케이블을 이용한다면 더 멀리서 통신할 수 있다. 10m의 USB 케이블을 이용하여 컴퓨터에서 스마트폰의 텍스트 파일에 접근하여 어떤 문자를 적고 저장한다면 스마트폰 사용자는 10m 떨어진 곳에서 컴퓨터 사용자가 저장한 텍스트 파일을 열어 그 문자(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USB 케이블을 통해 연결되어 10m 거리에서 서로 통신할 수 있다. 이것의 거리를 매우 멀리 늘리고, 연결을 매우 많이 한 것이 인터넷이다. 컴퓨터 내부의 통신(네트워크) 또한 존재하는데 그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사용자{입력장치(키보드, 마우스, 마이크, 카메라 등)}

소프트웨어(응용 프로그램─운영 체제)

하드웨어주{기억장치(RAM, SSD, HDD 등)─중앙처리장치(CPU)}
※RAM: Random Access Memory, SSD: Solid-State Drive 또는 Solid State Disk, CPU: Central Processing Unit.

소프트웨어(운영 체제─응용 프로그램)

사용자{출력장치(모니터, 스피커 등)}

정리하자면 인터넷이란 '컴퓨터─라우터(라우터─라우터)─ISP─라우터(라우터─라우터)─컴퓨터'이다. 즉, 이것을 눈 앞에 한 번에 보여주어야만 인터넷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인터넷을 어떤 인간의 눈앞에 보여줄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불가능하다. 누군가 인터넷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것은 너무도 거대하여 보여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인터넷을 보여주려는 사람은 자꾸 인터넷이 아닌 인터넷의 일부만을 보여줄 게 될 것이다.

하드웨어(CPU, RAM 등)가 없다면 통신은 불가능하지만, 하드웨어는 하드웨어이지 그것이 인터넷인 것은 아니며 입력장치, 출력장치, 소프트웨어, 운영체제가 없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LAN 케이블, 광케이블 ,해저 케이블, 라우터, ISP가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이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인터넷이 불가능하지만, 그 요소 하나가 인터넷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인터넷 인프라라고 하며 인터넷 인프라의 모든 것이 그대로 존재하여도 지구에 인간(사용자)이 없다면 인프라(연결)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통신은 존재하지 않아 그것을 인터넷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은 통신이다.

 

위 이미지는 사람이 죽는 순간, 뇌 안의 전기 신호가 사라지는 것을 촬영한 것이다. 죽는 순간 뇌 안에서의 뉴런─뉴런 간의 통신은 사라진다. 뇌는 전기전하로 통신하는데. 우리는 뇌 안에서의 전기적 통신이 사라진 인간의 모든 것이 (여전히 얼마간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고 시체라고 부른다. 인터넷 또한 모든 것이 그대로 존재하여도 통신이 없다면 그것은 시체이지 인터넷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렇다면 통신이 인터넷인가? 통신이란 무엇일까? 인터넷 인프라를 통해 통신을 전달될 때 그것은 전기 신호(전자)거나 광신호(광자)일 것이다. 인터넷 인프라는 그저 연결일 뿐 인터넷의 본질은 상호 통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려면 전달 중간에 전자 또는 광자를 잡아채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자 또는 광자일 뿐 통신이 아니다. 전자 또는 광자가 의미하는 바는 결국 비트(Bit, 0 또는 1)일 것이다. 우리가 통신을 물리적으로 잡아챈다면 0과 1로 된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해석할 수 없다. 즉, 통신이란 인터넷 인프라 너머의 사용자(인간)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인터넷 인프라란, '컴퓨터─라우터(라우터─라우터)─ISP─라우터(라우터─라우터)─컴퓨터'이지만, 인터넷이란, '사용자(인간)─컴퓨터─라우터(라우터─라우터)─ISP─라우터(라우터─라우터)─컴퓨터─사용자(인간)'이다.

내재신론에서는 신이 우주에 관입하지만, 시공간 그 너머까지 연장되어 있다고 본다.
일신론에서는 신과 우주가 별개의 존재이나 신은 편재한다.
범신론에서는 우주가 곧 신이다.

인터넷 인프라가 곧 인터넷이다.
인터넷(통신)과 인터넷 인프라(수단)는 별개의 존재이나 인터넷은 편재한다.
인터넷이 인터넷 인프라에 관입하지만, 물리적 구조 그 너머까지 연장되어 있다고 본다.

편재(omnipræséntĭa)하는 인터넷을 한 번에, 눈 앞에 보여줄 수 없듯 편재(omnipræséntĭa)하는 신 또한 그러하다. 인터넷(전체)을 보여주겠다고? 그것은 스마트폰(일부)이다.

인터넷의 구조가 이러하듯, 신의 구조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인간(사용자)─식(識)─근(根)─경(境)─시공간(라우터)─경(境)─근(根)─식(識)─인간(사용자)' 다시 적자면 '인간(사용자)─해석─인지─대상─시공간(라우터)─대상─인지─해석─인간(사용자)'이다.

불교에서 인간의 감각기관과 의식기능을 근(根, Indriya)이라 하고, 그 기관과 기능의 대상을 경(境, viṣaya)이라 하며, 그 기관과 기능으로 대상을 식별하는 마음작용을 식(識, Vijnana)이라 한다. 근(根), 경(境), 식(識)의 3사화합(三事和合)에서 생겨나는 것을 촉(觸)이라고 한다.

근(根)이란 인간의 주요 감각기관인 눈(眼根: 안근), 귀(耳根: 이근), 코(鼻根: 비근), 혀(舌根: 설근), 몸(身根: 신근)이라는 오근{五根, 五官: 오관)에 의식기관(意根: 의근)을 포함하여 6가지이며 이를 육근(六根)이라 한다. 육근(六根)은 육경(六境)이라는 외경(外境, 대상)을 인식(인지, 해석)하며 6근(根)은 6경(境)을 인식 가능케하는 뿌리(根: 근)이다. 육경(六境)이란 색(色: 빛, Atom: 아톰, 형태, 색상 등), 성(聲: 소리), 향(香: 향기, 냄새), 미(味: 맛), 촉(觸: 닿을, 촉각), 법(法, 규칙)이라는 6가지 인식 대상을 말한다. 여기서 법(法)이란 의근(意根)의 대상(境: 경)이 되는 것이다.
※근(根)은 산스크리트어로 인드리야(Indriya)이다. 인드라(Indra)는 하늘(είδος: 이데아)과 번개(창조)의 신(神, 因果: 인과)이자 신(神, 因果: 인과)들의 왕(인과)이다. 인드리야(Indriya)는 (Indra: 인드라)신의 권능이라는 뜻이다.
※법(法)은 의근(意根)의 대상으로서 물질(원자 등)로 존재하지 않으며 비물질(관념)으로 존재한다. 물질에 대해서 물리학(구조, 설계도, 역학)이라는 규칙이 존재하듯 비물질(관념) 또한 규칙(구조, 설계도, 역학)이 존재하며 이를 법(法)이라 한다.
※오관(五官)은 눈, 귀, 코, 혀, 피부를 의미하며 오근(五根) 또한 오관(五官)을 의미하나 그 차이는 오관(五官)은 물질 세계(唯物: 유물, 우주)에 물질(세포)로 구성된 것만을 뜻하는 것이며 오근(五根)은 그러한 오관(五官)과 오관(五官)을 가능케한 비물질 세계(觀念: 관념)의 비물질(神: 신)을 포함하는 것이다. 오경(五境, 대상)은 오식(五識, 해석)으로 나타나며 오식(五識, 해석)이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을 말하며 오경(五境, 대상)이 오관(五官, 인지)에 닿으면 오식(五識, 해석)이 되며 오근(五根, 근원)은 오식(五識, 해석)을 가능케하는 것이다.
※근(根: 뿌리, 과거)→관(觀: 볼, 현재)→식(識: 알, 미래)
※물질(五境: 오경)에 비물질(法: 법)을 더하여 육경(六境)이 되고 이러한 육경(六境)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의식(意識)이 생겨난다. 의식(意識)은 법(法)이라는 경(境: 지경, 대상)을 식(識, 해석)한 것이다.
※아톰(atom)이란 원자(原子)를 영어로 표현한 것으로 원자란, 모든 고체, 액체, 기체, 플라즈마가 전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학 반응을 통해 더 쪼갤 수 없는 단위이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구성되며 핵반응을 통해서는 더 작은 단위로 나뉠 수 있다. 아톰(atom)은 기원전 450년경 고대 그리스의 인물, 데모크리토스(Democritus)가 만든 아토모스(atomos)를 어원으로하며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부정을 뜻하는 a와 자름을 뜻하는 tomos를 합성하여 atomos라는 자를 수 없음을 뜻하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어원대로라면 당대에 알고 있는 가장 작은 기본 단위(현재는 쿼크와 렙톤)가 원자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물리학과 화학에서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아톰(Atom)은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 본래의 뜻대로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것(原: 근원)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데아(Idea):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얻어지는 최고 개념. 플라톤에게서는 존재자의 원형을 이루는 영원불변한 실재(實在)를 뜻하고, 근세의 데카르트나 영국의 경험론에서는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 내용, 곧 관념을 뜻하며, 독일의 관념론 특히 칸트 철학에서는 경험을 초월한 선험적 이데아 또는 순수 이성의 개념을 뜻한다.

6근(根, 인지)은 6관(觀, 기관, 매개, 연결, 통로)을 통해 6경(境, 대상)과 작용(통신)하여 식(識, 해석)이 된다. 귀(耳)의 경우, 귀(觀: 관)와 소리(境: 경)의 관계는 '귀(수신)*소리(발신)=결괏값(識: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귀(수신, 觀: 관, 기관)가 없으면 소리(발신, 境: 경, 대상, 識: 식, 해석)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소리(발신, 境: 경, 대상)가 없으면 귀(수신, 觀: 관, 기관, 識: 식, 해석)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눈(眼: 안), 코(鼻: 비), 혀(舌: 설), 몸(身: 신)의 작용 또한 그러하며 라디오(수신)가 있어도 라디오 방송(발신)이 없다면 라디오를 구매(진화, 적응)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앞서, 컴퓨터 내부의 통신 구조는 '사용자─소프트웨어─하드웨어─소프트웨어─사용자'라 하였는데 이는 '데이터 입력─데이터 전송─데이터 처리─데이터 출력─데이터 해석'이기도 하다. 이는 다시 '경(境)─관(觀)─근(根)─관(觀)─식(識)이라 할 수 있다. 관(觀: 볼 관)은 보는 통로(연결)이면서도 보이는 것(대상, 境: 경) 그 자체가 된다. 경(境, 실체)는 관(觀, 인지)로 규정되며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은 근(根, είδος: 이데아)이며 우리는 인지하는 할 수 있는 만큼의 경(境)을 관(觀)한다. 그리고 관(觀)할 수 있는 만큼에서 식(識, 해석)하며 경(境, 대상, 실체)은 식(識, 해석, 홀로그램)이 된다.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境: 경)이 곧 공(識: 식)이요 공(識: 식)이 곧 색(境: 경)이다.
※플라톤은 이데아(είδος: 에이도스)를 영혼의 눈(이성, 識: 식)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현상은 눈(觀: 관)으로 볼 수 있다. 현상계(색계)―이데아계(공계)

컴퓨터의 그림판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사용자(인간)의 머리 속(∞: 무한)의 그림(실체)을 데이터 입력한다. 하지만 데이터 입력을 하는 수단(마우스, 그래픽 태블릿 등)에 의한 한계로 그것을 전송(연결, 통신)하는 과정에서 손실(왜곡)이 일어난다. 그림판으로 표현(발현)할 수 있는만큼 그림(데이터)은 출력(실현)되고 그 출력 그림(데이터)을 보고 다른 사용자가 그 그림을 보게된다(인지, 해석).
※데이터의 입력, 전송, 처리, 출력, 해석은 동시에 일어난다.

컴퓨터에서 하드웨어란 물리적 구성 요소를 말하며 소프트웨어란 명령어 집합을 말한다. 컴퓨터에 인간을 대입하자면 하드웨어는 세포 또는 신체일 것이며 소프트웨어는 유전자 또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드웨어를 작동하게 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이며 소프트웨어를 동작하게하는 것은 하드웨어이다.
※작동(作動): 기계 따위가 작용을 받아 움직임. 또는 기계 따위를 움직이게 함(비목적, 비의식, 비의도, 작용반작용).
※동작(動作): 어떤 일(목적)을 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는 일(수단). 또는 그 움직임. 거동. 의식(의도)적인 행위.
컴퓨터(하드웨어, 인간, 우주)는 프로그래밍(소프트웨어, 정신, 물리 법칙)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팜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컴퓨터(하드웨어)가 없어도 그림(목적)을 못 그리지만 그림판(소프트웨어)가 없어도 그림(목적)은 그릴 수 없다. 그리고 또한 사용자(대상 또는 의식)가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관(觀, 물질)을 작동시키는 것이 근(根, 근원)이며 동작시키는 것이 식(識, 정신)이다.

이 우주의 통신 구조 또한 하드웨어(입출력장치 및 데이터처리장치)와 소프트웨어(프로그래밍, 코딩)로 나눌 수 있다. 우주의 하드웨어는 실재하는 물질(色: 색)이며 우주의 소프트웨어는 실재하지 않는 비물질(空: 공)이다.
※실재(實在)
⑴현실에 존재함. 또는 그것.
⑵실제로 존재하는 사물, 사상, 사유 혹은 체험.
⑶주관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⑷객관적 자연에 속하는 것. 더욱 자연을 생멸 변화의 현상계로 볼 때는, 이러한 현상적 규정을 초월하는 영구불변의 형이상학적 실체, 본체를 의미함.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물질)이 곧 공(비물질)이요 공(비물질)이 곧 색(물질)이다.

야구공(물질, 色: 색)을 야구 방망이로 타격하였을 때, 어느 지점에 떨어질지에 대한 것은 물리 법칙(벡터, 관성, 가속도,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저항, 중력 등, 空 :공)으로 예측(계산)할 수 있다. 컴퓨터 게임으로 보자면 물질(Atom: 아톰)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비트(Bit, 0 OR 1, 데이터)일 것이고 이것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 게임의 프로그래밍(의도)된 물리 엔진(물리 법칙)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의 시인, 이상(李箱)은 1934년 7월 24일 자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烏瞰圖)를 게재하였다. 오감도 시제 1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뿐이 모였소.(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13의 의미는, 12는 완성, 우주 진리와 질서, 순환을 상징하는 수로 이것에 1을 더한 13은 끝, 죽음, 격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12는 완전한 질서(신, 空: 공)를 상징하며 13은 불완전한 혼돈(인간, 色: 색)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오감도(烏瞰圖)는 까마귀 오(烏), 굽어볼 감(瞰), 그림 도(圖)의 한자를 사용하고, 오감도에서 아해라는 표현은 아이의 옛말로 까마귀(神: 신, 혼돈)가 하늘(είδος: 이데아)에서 내려다볼(굽어살필) 때 인간이 아이처럼 작게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아해(아이)는 그 대상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까마귀(神: 신)의 관점에서는 보자면 인간이란 권능을 가진 존재가 아닌 그저 아해(아이)일 것이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생략···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13이란 인간을 상징하면서 그 인간 전체를 의미한다. 인간 전부가 무언가를 무서워 하고 있다.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렇게뿐이 모였소.(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인간들 중 일부는 무서운 인간이고 일부는 무서워하는 인간이다. 인간이 무서워 하는 것(대상)은 (무서운) 인간이며, (대상을) 무서워하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Leviathan: 리바이어던, 괴물)은 인간(Leviathan: 리바이어던, 괴물)을 무서워한다. 그렇다면 이 무서움이란 것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곳이 바로 신(神)이 존재하는 장소이다. 인간이 홀로 있다면 (인간으로 인한) 무서움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둘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둘 모두에게 있다. 인간의 수가 늘어난다면 무서움은 인간의 수만큼 늘어날 것이다. 인터넷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가 늘어나는 만큼의 장소에 존재하게 된다.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가 1명이라면 그것은 인터넷이라 불릴 수 없고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본질은 통신이기 때문이다. 신(神)이란 무엇인가? 무서움(공포)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무서움(공포)이 존재하는 장소에 신(神)이 존재한다. 신(神)이란 연결(통신) 속에 존재한다. 그러한 연결은 존재(물질, 色: 색)가 아니며 눈으로 볼 수 없는 비존재(비물질, 空 :공)이다. 눈으로는 보이는 것(觀 :관)은 오로지 인간(色 :색)이 보일 뿐이다. 산재(편재)하는 무서움(神: 신, 空 :공)은 보이지 않는다. 오감도(烏瞰圖)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무서워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으나 그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혼돈(13, Chaos, Leviathan)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神)은 편재(omnipræséntĭa)한다. 이만 글을 마친다.